인터넷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록될 발명품 중 하나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연결해 주었고 지구촌이라는 개념을 실현한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이 짧은 역사의 발명품이 우리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으며 다가올 2025년은 전 세계인 대부분이 온 세상의 모든 정보에 접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80억 인구가 연결된다니…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필자는 이쯤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해커 문화와 인터넷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지성 문화를 연결해보고자 한다. 현재와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디지털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정표를 짚어보지 않고 지금의 클라우드 컴퓨팅, 빅 데이터, 소셜네트워크, 큐레이션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마치 유교를 모르고 대한민국 문화를 이해하려는 것과도 같다.
1. 집단 지성의 뿌리는 해커정신이다
“마지막 해커”

▲ ‘마지막 해커’스티브 워즈니악과 리처드 스톨만
통상적으로 현대사회에서 해커라고 하면 컴퓨터 지식을 이용해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본래 해커라는 낱말 자체는 선악의 개념을 담지 않은 중립적 의미가 있다. 해커라는 단어는 60년대 미국 MIT대학생들을 시작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밤낮으로 컴퓨터에 매달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고 토론하며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창조와 재미 그리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처음에 애플컴퓨터 I을 만들었던 이유는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고 싶어서 였다[1])
그림의 오른쪽에 있는 리처드 스톨먼은 지금부터 이야기할 해커문화의 중심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재능을 보였던 스톨만은 1970년대 MIT인공지능 연구소의 해커로 들어갔다. 하지만 1980년대 소프트웨어 산업의 상업화로 말미암아 그의 해커 공동체가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실험실 내의 다른 해커 동료들은 실험실을 나가 회사를 차리고 기존의 자유 소프트웨어를 그들만의 독점 소프트웨어로 바꾸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이에 분노한 스톨먼은 1983년에서 1985년 사이의 2년 동안 혼자 힘으로 동료들의 결과물들과 똑같은 기능의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그들의 독점을 막는 일을 했다. 스톨먼이 소프트웨어의 독점을 반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곁다리로 끼어들자면, 당시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그냥 얼마든지 무료로 복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프로그램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해커정신이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하지만 하버드 법대생 빌 게이츠의 가치관은 정반대였다. 그는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베이식을 개발했으며 0과 1로 이루어진 논리 수학의 집약체인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수익모델을 고안해 낸 타고난 사업가이다. 빌게이츠는 자신이 만든 베이식을 공짜로 공유해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애호가들을 발견하고는 깊은 빡침을 느꼈는지 컴퓨터 사용자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컴퓨터 잡지에 실었다[2]. 1976년의 일이다. 그 내용인즉슨
“여러분은 대다수가 소프트웨어를 훔쳐서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략) 이것이 공정한 일일까요? (중략) 여러분이 소프트웨어를 훔침으로써 초래되는 결과 중 하나는 훌륭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는 길이 막힌다는 겁니다. 무보수로 전문적인 일에 혼신을 기울일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중략) 지금이라도 로열티를 지불하고자 하는 분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3]
물론 이 편지를 기고할 당시에는 이러한 내용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1977년 애플 컴퓨터II를 시작으로 개인용 컴퓨터, 일반인을 위한 컴퓨터 세상이 열렸고 빌 게이츠의 생각대로 소프트웨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빌 게이츠는 억만장자의 대열에 올라섰다. 실로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자 다시 스톨먼 이야기로 돌아오자. 스톨먼은 이에 굴하지 않고 1985년, GNU(General Public License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선언문을 발표하며 비영리 기관인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 FSF)을 설립했다. GNU의 GPL(General Public Licence) 허가를 가진 프로그램은 아무나 널리 복사해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누구라도 출처만 밝히고 공익적인 것에 이용한다면 자신의 자료를 사용해도 된다고 적어놓았다. (GPL은 Copyright의 반대되는 개념인 Copyleft 사용 허가이다.)
나는 올바른 양심으로 비공개 협정이나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에 서명할 수 없다. 여러 해 동안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경향과 다른 박정한 일들에 저항해 보았지만 결국 그들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내 의지에 역행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연구소에 나는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4]
자유는 요리사가 요리법을 이용할 때 즐기는 자유와 같은 것이다. 만약 요리사들에게 지금부터 당신들이 요리법을 함께 나누거나 바꾸면 당신들은 “해적”이라고 불리고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분노할 것을 상상해보라. 나는 80년대에 독점적인 소프트웨어 사용을 강요받았을 때 똑같은 분노를 느꼈고, 그 분노가 1984년에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5].
“리눅스의 탄생”
GNU프로젝트와 소프트웨어를 부각시키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으니 1991년 리누스 토르발즈라는 대학원생이 취미 삼아 ‘리눅스커널 Linux Kernel’을 개발한 일이다. (커널은 운영체제의 핵심 부분을 뜻한다)
GNU는 1990년대 초반까지 커널이 제외된 완성도 높은 운영체제를 만든 상태였고 때마침 토르발즈가 완성된 커널을 개발하며 GNU/리눅스 조합의 완성된 운영체제가 탄생하였다. (흔히 리눅스라고 줄여서 표현하지만 GNU를 만든 스톨먼은 GNU/리눅스 운영체제라는 정확한 명칭을 사용할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리눅스로 표기하겠다.)
리눅스는 자유 소프트웨어와 오픈 소스 개발의 가장 유명한 표본이다. 리눅스 덕분에 비싼 유닉스운영체제를 공짜로 아무나 사용할 수 있게되었고, 200여 종류가 넘는 배포판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리눅스는 IBM, HP와 같은 거대 IT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서버컴퓨터 분야에서 유닉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 체제의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유닉스 서버 제조사들은 리눅스 때문에 시장을 잃고 하나둘씩 망해갔다. 돈을 받고 팔던 유닉스들도 무료로 전환하거나 사라졌다. 리눅스느 유닉스 서버가 고가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렸고 가격과 효율성이 중시되는 인터넷 서버 시장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렸다[6].

▲ 스톨먼을 닮은 GNU로고, Copyleft 로고, 자유소프트웨어 재단 로고, 리눅스의 마스코트인 턱스
“오픈소스(Open Source) 문화”
리눅스를 개발한 리누스 토발즈는 “지켜 보는 사람만 많으면 시스템 오류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Given enough eyeballs, all bugs are shallow”는 ‘리누스의 법칙 Linus’s Law’을 주장했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해커 정신이 투철한 개발자가 버그를 발견하면 “내가 고쳐버리겠다!!” 라고 나서고, 사용자는 “내가 개발자들을 갈궈주겠어!!” 라며 문제점을 지적해주면 된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이것들이 공유되고 소프트웨어는 빠른 시간안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의 자세한 설명이 궁금한 사람은 링크1, 링크2 를 참조하자.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Copyright 이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GNU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과 리누스의 법칙으로 대표되는 오픈소스 문화가 아이디어의 공유를 통한 소프트웨어의 다양성, 소프트웨어의 재창조, 독점 소프트웨어의 대안,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이다. (일 예로 리눅스는 많은 사람들이 저가형 서버를 사용할 수 있게 도왔으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도 탄생시켰다.)
그리고 21세기에와서 오픈소스 웹 브라우저인 파이어폭스와 구글 크롬은 이용자들의 토론, 의견 제시를 유도하며 수많은 개발자들의 참여를 일으켰다. 그리고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점유율 1위를 지켜오던 MS의 독점 소프트웨어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이는 리누스 법칙의 효용성이 증명된 명백한 사례이며 오픈소스 문화의 공유와 협업으로 인한 성능이 끼워팔기 꼼수를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1세기를 선두하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트위터와 같은 ICT기업은 오픈소스, 오픈API문화를 통한 협업을 지향하고 있다.
2. 인터넷의 등장
“월드와이드웹”
올 초 내한했던 인터넷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 경은 월드와이드웹을 만들었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전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해답의 일부분이 있다. 세계에 산재 되어 있는 부분적인 아이디어를 모아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생각으로 20년 전 인터넷 (월드와이드웹)을 만들었다. – 팀버너스리, SDF2013
이렇게 월드와이드웹은 태생부터 협력을 염두하고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터넷을 바라 본다면 블로그, 위키피디아, 오픈소스, 클라우드 기반의 협력적 플랫폼 등을 통해 광대한 정보 나눔의 장으로 성장한 것은 결코 우현이 아니다.

▲ 팀버너스리가 월드와이드웹 아이디어를 정리한구상도 / 이미지 저작권:SBS
“위키피디아: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증명”
사회학자 피에르 레비(Pierre Levy)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지성(集團知性, 영어: collective intelligence) 개념을 정리했다. 존중을 바탕으로 한 다른 사람의 세계와의 불가해하고 비환원적인 만남에 대해 피에르 레비는 오늘날 기업, 학교, 대학,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지식의 나무’라고 설명하면서, 집단지성에 대해 “그것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가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이라고 정의한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에 의한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을 말한다. 소수의 우수한 개체나 전문가의 능력보다 다양성과 독립성을 가진 집단의 통합된 지성이 올바른 결론에 가깝다는 주장이다[7].
집단지성의 효과와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위키피디아(Wikipedia)이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고 편집과 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언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2001년 시작되었다. 2013년 기준 영어판 433만여 개, 한국어판 25만여 개를 비롯하여 도합 3000만여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백과사전이다. (참고로 Wikipedia의 Wiki 는 빨리빨리라는 하와이 어 WikiWiki에서 온 말이다.
“집단지성의 맹점”
대학교 수업의 텀 페이퍼 제출이나 중요한 기획서를 작성시 위키피디아 자료를 인용했다가 교수님 혹은 직장 상사로부터 지적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자료의 오류가 많으니 정확한 사실관계나 정보의 전달을 위해 인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키피디아 자료의 정확성, 신뢰성에 대한 의문은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누구나가 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누군가가 악의적인 목적을 갖고 정보를 왜곡할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치적인 이슈 거리, 안티팬이 많은 특정 인물일수록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넷 반달리즘(Net-Vandalism)이라 부른다. 게다가 글쓴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 글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네이처 (Nature) 뉴스 팀이 2005년에 실시한 브리태니커와 위키피디아 기사의 정확도에 관한 조사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두 백과사전 기사의 정확도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42개의 과학 관련 기사에 관한 해당 전공 과학자들의 평가에는 위키피디아는 기사당 평균 4개의 오류, 브리태니커는 기사당 평균 3개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두 사전 사이의 기사의 정확도는 사실상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Giles 2005, 900~901) 전 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주제별로 자료를 생성하고 업데이트하면서 만들어진 위키피디아가 전문 석학들로 구성돼 만들어진 백과사전과 양적, 질적으로 동등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8]. 그리고 2012년 3월 14일 브리태니커는 244년만에 발행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종이 시대 거인의 침몰을 알리는 신호이다.
위키피디아와 관련한 재미난 일화가 한가지 더 있다. 위키피디아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생어가 만든 시티즌디움 이야기이다. 래리 생어는 넷반달리즘, 비전문성 등에 못마땅해했고 전문가의 역할이 배제되는 것을 지켜보고 좌절감을 느껴 1년 만에 위키피디아를 떠나 시티즌디움을 만들었다. 시티즌디움은 위키피디아와는 다르게 최소한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관리원(constable)’으로 위촉시켜 관련 정보를 정리, 편집하도록 하여 신뢰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펼쳤다[9].
시티즌디움의 현재 스코어는? 전체 문서 개수는 고작 16만 개에 불과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페이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시티즌디움은 실패했다. 개방, 공유, 참여라는 웹2.0의 특징을 잘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정작용(自淨作用)은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이 어떠한 처리를 하지 않아도 공기나 물에 포함된 오염 물질이 스스로 정화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를 위키피디아의 집단지성에 대입시켜보자. 분명히 위키피디아는 넷 반달리즘과 잘못된 정보라는 오염 물질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러 사람의 자발적 참여와 ‘공동 협업’, ‘끝없는 논쟁’ 앞에서 오염 물질은 정화되는 것이다. 이는 놀랍게도 리누스의 법칙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다.
조금 늦게 찾았습니다만, 2005년 Ted Global. 지미 웨일스의 테드톡이 있었군요.
3. 결론
사실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해커정신, 리눅스, 오픈 소스라는 말 자체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며 이와는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IT 엔지니어들만큼 오픈 소스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해커 – 자유 소프트웨어 – 오픈 소스 – 월드와이드웹 – 집단지성]을 조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21세기는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도 아닌 디지털 시대이기 때문이다. 즉,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문화의 중추에는 디지털이 떡하니 놓여 있으며 디지털 문화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서는 디지털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천천히 생각해보자.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며 생긴 변화는? 엑셀, 워드, 파워포인트와 같은 소프트웨어가 회사의 업무 환경에 미친 영향은? 또 인터넷과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우리의 소비, 취미, 커뮤니케이션 등에 미친 영향은?
예외 없이 21세기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이 디지털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디지털 문화를 구축하는데 크게 이바지 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일련의 흐름을 연결하게 된 것이고 해커정신을 갖고 있던 컴퓨터 괴짜들은 처음부터 자발적인 공유와 협업을 통한 진보라는 가치를 지향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그들은 그냥 재미로 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해커정신의 산물인 인터넷, 블로그, 위키미디어, 소셜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이 지향하는바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추측해본다.
참고
[1][3] 윌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민음사, 2011), 112p
[2] 빌게이츠의 편지 http://g-ecx.images-amazon.com/images/G/01/books/orly/GatesLetter.pdf
[4] GNU선언문 http://www.gnu.org/gnu/manifesto.ko.html
[5] 리처드스톨만 인터뷰 http://ournature.org/~novembre/GNU_the-rise-of-the-free-software-movement.html
[6] 김인성, 한국IT산업의 멸망 (북하우스, 2011), 86p
[7] Collective Intelligence http://goo.gl/MZn78i
[8] 이항우, 클릭의사회학, (이매진, 2013), 164p
[9] 시티즌디움 http://goo.gl/BFqesS